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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22. 22世 〉67. <부정공>연식(淵植)配열부경주이씨실적비(烈婦慶州李氏實蹟碑)
1. 문헌 목록 〉22. 22世 〉69. <부정공>호재(瑚材)配유인목천장씨행록(孺人木川張氏行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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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부정공>연서(淵恕)配열부목천장씨기행(烈婦木川張氏紀行)
(부정공후)22世연서(淵恕)配 열부목천장씨기행(烈婦木川張氏紀行) 孺人張氏忠毅公諱潤后雙鉉女也自幼敏慧麻쁊之執烹調之飪不煩姆敎而自能及笄歸于趙淵恕趙籍玉川副正公諱瑜后達鉉之子也孺人自執笄孝奉嫜姑滫隧之供能盡志體事君子能克賓敬之禮施于家衆恩義兩至事之大小必咨決于家長而可否相濟宗戚里閭接之有禮閨譽頗著矣未幾夫遘貞疾至于難治孺人皇皇罔措躬執糜樂昕夕靡懈築壇而禱之稽辰而願堡竟遭城崩絶而復甦水醬不入口矢以下從舅姑泣諭曰爾若以溘然無知爲快則惟我失子之兩人將誰恃而生且爾夫生世之痕將憑何以傳乎孺人乃沈吟良久便幡然回心送終諸具一一看檢反慰姑嫜而痛哀之聲不發於其前以媤姪東弼爲夫之後織紝紡績夜而繼日千受萬生喫去喫來而勤儉資生育嗣兒恩義益摯隣里嘖嘖稱賞焉噫世之論烈者不知全節保家之爲難而惟以下從致死爲貴不思甚也盖死生亦大捐軀致死烈則烈矣激於一時之憤迫而致死則易忍辛耐苦於凄房之中奉舅姑育嗣兒而盡其道使亡夫不朽於來永嗚呼難矣媤姪東胄以孺人懿行不欲泯滅囑不佞而記之故遂感于中而不辭焉 歲在庚子 仲春下浣 玉川 趙敏植 撰 (부정공후)22世연서(淵恕)配 열부목천장씨기행(烈婦木川張氏紀行) 유인 장 씨는 충의공 휘 윤(潤)의 후손 쌍현(雙鉉)의 따님이다. 어려서부터 삼과 모시의 길쌈이며 음식 조리를 스승의 가르침이 없이 스스로 능하고 성혼하여 조연서(趙淵恕)에게 우귀하였다. 조 씨의 관향은 순창으로 부정공 휘 유(瑜)의 후 달현(達鉉)의 아들이었다. 유인이 우귀한 뒤로 효도로 시부모를 받들어 좋은 반찬을 장만하여 능히 뜻과 몸을 봉양하고 군자를 섬기며 손님처럼 공경하여 그 예를 가권에게 베푸니 은혜와 의리 두 가지가 다 지극하였다. 대소사를 반드시 가장에게 물어 가부를 결재하며 종척 인리를 접대함이 법도가 있으니 규중의 아름다운 소문이 자못 나타났다. 미구에 지아비가 병을 얻어 치료가 어려우니 유인이 불안하고 어쩔 줄을 몰라 미음과 약 다리기를 조석으로 게을리 아니하며 단을 쌓고 북두에 빌어 대신할 것을 원하다가 마침내 군자의 상을 당하였는데 숨이 끊어졌다가 다시 회생하되 물과 장을 먹지 않고, 따라 죽기로 맹세하니 시부모가 울며 타일러 말하기를 『네가 만일 남편 잃은 것만 생각하여 네 생각대로 죽으면 우리 아들 잃은 두 사람은 장차 누구를 믿고 살며, 또 네 지아비의 세상에 난 흔적을 장차 무엇으로서 전할 것이냐.』 하였다. 유인이 이에 곰곰이 생각하더니 문득 마음을 돌려보내고 마칠 기구를 일일이 준비하고 도리어 시부모를 위로하며 애통한 소리를 그 앞에서 내지 아니하고 시질(媤姪) 동필(東弼)로 지아비 후사를 삼았다. 밤을 새여 길쌈하고 천신만고 근검 자생하여 양자를 기르니 향방이 큰소리로 칭도하였다. 아, 세상에서 열행을 말한 자들이 열절을 온전히 하고 집안을 보전하기가 어려운 줄을 알지 못하고 오직 따라서 죽는 것을 귀하게만 생각하니 심히 애석한 일이다. 대개 사생이 또한 크니 몸을 버리고 죽는 것이 열절은 열절이나 한때 분통에 격동하여 죽기는 쉬우나 쓸쓸한 방에서 쓴 것을 참고 괴로운 것을 견디며 시부모를 받들고 양아를 기르며, 그 도리를 다하여 망부로 하여금 후사가 있게 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시질 동주(東冑)가 유인의 아름다운 행실을 잊어버릴 수 없어 나에게 기문을 부탁한 고로 마침내 감동한 바 있어 사절하지 아니한다. 조민식(趙敏植)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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